이곳은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지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 상업적인 글, 비실명으로 게시된 글은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9년 11월 6일 - 손이 마르고 혀가 입천장에 붙더라도
유혜영 2019-11-05 17:00:25 63 0
일자 : 2019.11.6(수)
제목 : 손이 마르고 혀가 입천장에 붙더라도
본문 : 시편(Psalm)137:1 - 137:9

찬송 : 343장 (구찬송가 443장)


◈ 성경 읽기
  • 1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 2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 3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 4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아, 너는 말라비틀어져 버려라.
  • 6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도 더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야, 너는 내 입천장에 붙어 버려라.
  • 7
    주님,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그 날에, 에돔 사람이 하던 말, "헐어 버려라, 헐어 버려라. 그 기초가 드러나도록 헐어 버려라" 하던 그 말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 8
    멸망할 바빌론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 9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 시인은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겪은 비통한 경험을 회고합니다. 시인의 공동체는 그 상황에서도 예루살렘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대적의 멸망을 확신했습니다.

  • ◈ 성경 이해
    시인이 바빌로니아의 포로로 끌려갔을 때, 유다 백성은 바빌로니아의 강변에서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울었습니다(1절). 그런 유다 백성에게 바빌로니아 군대는 유흥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던 찬양을 부르라며 조롱했습니다. 이것은 회복의 꿈을 버리고 바빌로니아에 순응하라는 요구이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그럴 수 없어 수금을 나뭇가지에 걸어 연주를 접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조롱거리로 만드느니, 아예 수금을 연주하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을 잊지도, 바빌로니아에 순응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2-6절). 시인은 에돔을 하나님께 고소합니다. 에돔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기뻐하며 예루살렘을 조롱했으며, 예루살렘을 약탈했고, 피난 가는 유다 백성을 잡아 바빌로니아에 넘겼습니다(옵 1:11-14). 또한 시인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복수자가 되어 바빌로니아를 심판하실 것을 확신합니다(7-9절).

  • ◈ 나의 적용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7-9절 압제당하는 이들의 울분에 찬 호소를 들으십니다. 그들이 자기 손으로 잔혹하게 복수하도록 허락하진 않으셨지만, 그 억울하고 분한 심정은 이해하시고 그들의 말을 성경에 담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정의를 바로 세우실 것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6절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받더라도 ‘하나님 나라 꿈’을 버려선 안 됩니다. 그런 현실이 하나님 나라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말씀을 버리라고 종용하는 이 시대의 바빌로니아는 무엇입니까? 시인처럼 하나님을 믿으며 절개를 지키십시오.

  • ◈ 기도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세워지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이라는 현실을 살게 하소서.

  • ◈ 오디오 해설
라삼숙 : 수요성경학당을 오늘부터 나눔터에 올립니다.
예수님을 더욱 알기를 원합니다.

성전이 우상이 됨으로 그 성전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씨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래 부르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은 그발 강가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백성들은 586년 망할 때까지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종교인들이었습니다.
성전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껍데기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 없는 성경은 우상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외우고 지켰습니다.
영적인 맹인이었습니다.
성전을 헐어라 그러면 내가 삼일만에 짓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곧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살아나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기구를 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제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적용
ㆍ예수님이 나의 인생의 처음과 끝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날마다 천국을 이루는 삶이 되게 하소서! (11.06 05:42)
김선재 : <귀납적 말씀묵상>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의 강변에서
온갖 수치와 고난을 겪으면서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과
대적자들에 향한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시인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고 고백하고 있다.(1)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는데
자신의 압제자들이 자신들에게 노래를 부르고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님만을 위해 부르는 찬양을
자신들을 유흥과 쾌락을 위해 불러 보라고
압제자들이 시인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수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시150:3)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병사들을 맞이할 때
축하시에(대하20:27-28) 사용하는 기쁨의 악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수금을 연주하지 않을려고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시인은 자신들을 포로로
끌고 온 압제자들 앞에서
수금으로 노래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손이 말라비틀어 버리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서
수금을 타지 못하고 다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것이 낫다고 호소하고 있다.(5-6)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나 자신인가? or 하나님인가? 묻게 된다.

더욱 시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바로
같은 믿음의 형제였던 에돔 사람들이
자신들을 헐뜯고 조롱하며
하나님을 모욕했다는 것이다.(7)

나는 에돔사람처럼 믿음의 형제들에게
어떤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게 된다.

결국 시인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와 이런 온갖
수모와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만
장차 심판주인 "되갚는 사람", "메치는 사람"으로
오실"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8-9)

나는 오늘 주의 말씀속에서
누구를 믿고 의지하고 있는가?

나의 감사의 조건에 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의 세친구와 하박국 선지자의
입술의 고백처럼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야 하겠다.

※주여~
고난속에서도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게 하셔서
날마다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는
다윗의 모습이 있게 하옵소서~♡ (11.06 06:16)
유혜영 :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나라를 잃고 울부짖는 이스라엘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고통을 허락하실까?
손이 마르고 혀가 입천장에 붙으라고 저주할 정도의 비통함을 왜 허락하시는가?
우리의 인생을 돌아봐도 깨닫지만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연약함과 마귀의 것이 된 세상의 풍요와 인간중심의 문화는 우리의 믿음을 유지할 수 없게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요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하늘나라의 백성인 기독교인들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성공에만 매달리는 비본질을 추구하게 되어버리는 타락의 길을 가게 되어 하나님께서 흔들고 있으십니다.
회개만이 살길입니다. 거룩하고 정결한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마지막때라고 인정하는 이때에 주님이 오실날이 멀지않은 이때에 우리는 노아의 시대와 같이 여전히 기도와 말씀으로 예수님의 신부가 되기위해 성화의 길을 걷기보다는 세상의 성공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앞에 나의 믿음을 점검하며 우리의 본질을 되찾아가야합니다.
그길은 오직 기도와 말씀뿐입니다. 어제 큰 은혜가 오늘도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귀들이 마지막때임을 자각하고 더 열심히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매순간 날마다 주님오실것을 예비하며 등잔에 기름을 준비하며 살아가야합니다.
사도바울의 말씀대로 두렵고 떨리는 맘으로 날마다 주님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주님의 신부가 되어 혼인잔치에서 우리 가족들과 친척들, 우리 친구들과 함께 기뻐할 날을 고대하며 우리모두가 신부가 되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11.06 09:09)
김희정 :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 중 멸시받는 상황속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고백합니다.

저도 두리뭉실 현실과 타협하며 주님을 부정하는 믿음 없은 자가 되지말아야겠습니다. (11.06 10:09)
 프린트 추천 수정  삭제  답변  목록
번호 제 목 이름 작성일 조회 추천
* 큐티하는 방법을 안내드립니다. (7) 김명주 2013.03.20 8421 8
* 큐티에 도움이 되는 동영상 안내드립니다! (3)   김명주 2013.01.06 6194 10
2791 2019년 11월 12일 - 내 갈 길 아시니 (4) 유혜영 2019.11.11 52 0
2790 2019년 11월 11일 - 악에서 구하소서! (4) 유혜영 2019.11.10 61 0
2789 2019년 11월 10일 - 의인의 주님, 정직한 자의 하나님 (2) 유혜영 2019.11.09 30 0
2788 2019년 11월 9일 - 나를 지으신 주님 (2) 유혜영 2019.11.08 57 0
2787 2019년 11월 8일 - 나를 아시는 주님 (4) 유혜영 2019.11.07 73 0
검색취소